인계의 거리는 한적했다. 이안은 스마트폰을 연신 들여다보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낮게 쌓인 벽돌담은 아담했고 이안의 목적지까지의 길을 안내했다. 담 위에 쌓인 눈이 조금 떨어져 내렸다. 여전히 겨울이었지만 날은 조금 포근했다. 이 부근은 어제 눈이 와서일지도 몰랐다. 이안은 영국의 날씨를 생각하고는 한국의 화창한 하늘을 즐기기로 했다.
몇 번 코너를 돌자 금세 목적지가 보였다. 모퉁이에 위치한 제과점은 안에서부터 분주해 보였다. 문에 닫혀있다는 팻말이 걸려져 있었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고 문을 밀어 열었다. 딸랑, 하고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왔니? 네가 이안이구나.”
푸근한 인상의 중년 아주머니가 이안을 나와 반겼다. 그는 앞치마에 급히 손을 닦고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안은 고개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민정 씨 맞으시죠?”
“딱 맞춰 왔네요. 오는 길은 헤메지 않았나요?”
“전혀요. 도서관에서 가까워서 금방 왔어요.”
“서후가 데리고 오는 사람들은 다 똑같이 그 말을 하더라고요. 서후도 도서관을 좋아하는데 다 비슷한 사람끼리 친해지나 봐요.”
민정의 너스레에 이안은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이안이 긴장해서라고 생각한 민정은 잠시 일을 보러 가겠다며 가게를 편히 둘러보라고 했고, 방금 나온 것인데 맛 좀 보라며 과자 몇 조각을 담아 주었다. 하나를 입에 넣으려던 이안은 서후도 금방 내려온다는 민정의 덧붙임을 듣고 바짝 기합이 들어갔다. 그는 조심스레 가게를 살피기 시작했다.
민정이 운영하는 제과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카페를 겸한 것도 아니었기에 손님이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없었고, 대신 한쪽 벽면의 유리 케이스 안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디저트들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본래 빵이 있었을 것 같은 판매대 위에는 갓 구워진 쿠키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열되어 있었고, 옆으로 각종 구움 과자들이 식혀지고 있었다.
주택가의 작고 아담한, 지나치기는 쉽지만 한번 들르면 몇 번이고 다시 오게 되는 류의 제과점이었다. 이안은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제과점이 집 근처에 있는 것은 분명한 행운일 것이다. 그리고… 이안은 과자를 입에 넣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런 과자를 판다면 반드시 다시 들리게 될 것이다. 설령 지구 반대편에 살더라도.
이안이 입안에 사르르 녹아드는 버터의 풍미를 감상하는 동안 서후는 계단을 반쯤 내려와 있었다. 그는 이안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입에 올렸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민정 선생님 과자가 맛있죠?”
“앗, 네! 너무 맛있어서 내려오시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네요.”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오늘은 엽귀의 서경이 아니라 심부름센터의 의뢰인으로 만나는 거니까요.”
서후는 살짝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긴장한 것이 티가 났나. 사실 이안은 서후와 귀문 내에서도 몇 번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의뢰인으로 연락해 왔을 때 조금 놀랐다. 존경하는 선배였지만 친해질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던 터라 내심 기쁘기도 했고.
그러고보니 막상 연락해온 의뢰인들은 이안의 예상에서 거리가 있었다. 첫 번째 의뢰인은 이안이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긍이 갔다. 대법전 내 연애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다이스 쪽에서 충분히 이안을 알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흥미가 가서 발을 뻗어왔겠지.
두 번째 의뢰인은 조금 묘했다. 엽귀의 누가 전해준 걸까? 순전히 일손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기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타케시는 명백히 이안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 나온 사람 같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겸사겸사 벌초를 시켜먹긴 했지만. 엽귀의 선배 중 한 명이 이안을 걱정해서 이제는 외부인이 된 타케시에게 연락을 한 게 아닐지 의심이 들었다.
세 번째 의뢰인은… 이안은 솔직히 그 일화가 웃기긴 했다. 그 뒤로 하린과 몇 번 마주쳤고, 설원에서 시원한 욕설을 하던 방문자는 온데간데없고 고상하고 우아한 원탁뿐이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인사를 해주는 것이 이안을 썩 나쁘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어쩌다 이 심부름센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인데, 이안은 하린이 말한 ‘리콰이드의 애인이기 때문에 눈여겨봤다’는 말을 믿기는 했다. 반만 믿는 것뿐이지. 그런 것 치고는 묘하게 우호적이었는데…
네 번째 의뢰인인 서후는 타케시와는 조금 다른 결로 긴장이 되었다. 이번이야말로 이안의 소문을 들은 서후가 그에게 한 마디를 해 주기 위해 불렀음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그의 의뢰 내용을 생각하면 타케시처럼 일손이 필요해서는 아니…겠지? 이안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머릿속이 재빨리 가지런히 나열된 수십개의 아이싱 쿠키를 상영했다. 오늘의 이안은 예초기가 아니라 쿠키 틀이 될지도 몰랐다.
그 동안 서후는 이안이 쓸 앞치마와 모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몇 가지 물품을 건네고는 이안에게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전했다. 이안은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너른 작업대와 오븐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 제가 청소하는 걸 좀 좋아해서요. 취미거든요.”
청소가 취미인 사람. 이안 내에서 서후에 대한 평가가 더 무시무시한 쪽으로 재빨리 바뀌려고 하고 있었지만, 이안은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서후는 이렇게 말하는 것 또한 부끄러운 건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청소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들잖아요. 그냥 더러운 걸 지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리고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이니까 성취감이 들죠. 그래서 제과제빵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빵 구울 때는 그것밖에 생각을 안 하니까.”
“정말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매번 청소할 시간 내는 것도 일일 텐데.”
“일과가 그다지 차 있지 않아서요. 지인도 별로 없고, 아…”
서후는 말실수를 했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아마도 이 서경 엽귀는 사람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노심초사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이안은 더욱 친근하게 말을 붙이려 노력했다.
“그럼 다른 일 할 시간이 많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아시잖아요, 임무가 시도때도 없이 내려오는 거.”
이안이 웃으며 말을 받자 서후는 또 살았다는 듯이 얼굴이 환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문에서 언제나 서후의 사무적인 얼굴만 보아 왔기에 이안은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이안 안의 반듯한 엽귀이자 처형인인 서후의 이미지가 조금씩 흐트러졌다.
두 사람은 손을 깨끗히 씻고는 베이킹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막상 본방에 들어가자 서후는 임무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한결 부드럽고 편안한 톤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안은 한참 생각하다가 그 목소리가 민정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민정의 제자답게 서후는 설명을 상세히 했으므로, 초심자인 이안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미리 준비한 상온의 버터와 슈가파우더. 핸드 믹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계란을 풀고 조금씩 넣으면서 섞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이안은 서후가 시범을 보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음은 박력분. 체를 친 다음 반죽이 될 때까지 자르듯이 섞는다. 여기까지 마친 두 사람은 냉장고에 반죽을 휴지시키는 동안 잠시 쉬기로 했다. 서후는 2층에서 차를 내오겠다고 제안했고, 이안은 그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의 끝, 창가에서 햇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고요한 실내에서 빛먼지가 떠다녔다. 본래 가정집이었던 것 같은 2층에서 서후는 제법 그 공간이 익숙한 듯이 돌아다녔다. 금세 차와 흠집이 가 상품으로 내지 못한 것 같은 과자들이 준비되었다. 이안은 티세트를 차리는 것을 도우며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향긋한 차가 과자와 잘 어울렸다. 솔직히 과자가 압도적으로 맛있었지만. 따뜻한 차를 앞에 두자 서후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가 차를 한 입에 대고 입을 열었다.
“2층은 원래 민정 선생님 집이에요. 주택을 개조해서 1층을 가게로 쓰고 있는 거거든요.”
“아아… 저, 여기 올라와도 되는 건가요?”
이안의 농담을 받지 못한 서후는 진지하게 답했다.
“괜찮아요. 저도 맨날 올라오고,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하니 선생님도 윗층을 써도 된다고 허락하셨거든요. 1층은 이야기 나눌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그 말에 이안은 궁금증이 돋았다.
“정확히 어떻게 말씀하셨는데요?”
“아, 그… 후, 배…가 와서 베이킹을 도와준다고요.”
후배라는 말에 서후는 대단한 결례라도 저지르는 양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이안에게 서후는 존경하는 인물이자 까마득한 5계제 선배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이었다. 이안은 얼굴을 밝혔다.
“저도 존경하는 선배가 의뢰해주셔서 기뻐요.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없을 줄 알았거든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에요?”
그 말에 서후는 얼굴을 확 붉혔다. 쑥스러운 듯이 그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아, 그건 연락을 받아서…”
핫, 이번에도 실수했다는 표정. 낭패감이 그의 얼굴에 서렸다. 이안은 서후에게 미안함을 느낌에 동시에 역시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죄를 지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후를 들들 볶을 수도 없었기에 이안은 그 말을 흘려들은 척을 했다.
“의뢰는 아이싱 쿠키 만드는 것을 도와드리는 것이었죠? 일손이 부족한 건가요?”
“으음, 딱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서후는 자신이 하는 말이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거짓말은 못 하는 엽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안 씨와 대화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거든요.”
이안의 머릿속에서 다이스의 소문이 파다한 연애담 과 하린의 둘이 사귄다고 공지사항 때렸잖아? 발언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 맥락인가. 그것 외에는 딱히 다른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운명을 지웠다고 들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의 운명점을, 엽귀에 남기 위해서요.”
그쪽이었구나. 이안은 서후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깨닫고 몸을 곧추 세웠다. 서후는 찻잔을 내려다본 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저도 그랬거든요. 아니, 아직도 그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전에는 바로 지워도 좋으니까 한순간이라도 이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먼저 운명을 이으려는 시도도 했고요.”
“... 그렇다면 지금은요?”
서후는 시선을 찻잔에 둔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붉은색을 띄는 찻물이 맑았다.
“중간에 크게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어서, 모든 시도를 포기한 적이 있었어요. 친구랑도 싸웠고… 그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죄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요.”
“네. 엽귀는 대법전의 감찰기관이잖아요.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죠. 아무리 아끼던 사람이어도, 가까운 사람이었어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했다면 처벌해야 해요. 그런 책무를 지고 있는 자가 감히 다른 누군가와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꼼지락대는 손길에 찻잔의 찻물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한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줘 버리는 자신을 비관했어요. 잃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해버리고, 찢어야 할 걸 알면서도 매듭을 엮으니까요. 그 매듭이 나를 옥죄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죠.”
서후는 찻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듯이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엽귀이기 전에 마법사에요. 그리고 우리를 인계에 묶어 간섭, 그러니까 교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인연 그 자체이죠.”
그 말을 마치고 서후는 고개를 들어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한쪽 눈이 깊은 푸른색으로 빛났다. 아마 의안일 것이다.
“이안 씨는 연인과 앵커를 맞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까 한참을 우물쭈물거렸던 인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임무가 관련되어 있을 때만큼 진중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 그러나 단호함이 배어 있는 것은 어김 없는 귀문의 마법사였다. 이안은 드물게 잠시 말을 골랐다.
“앵커를 맺는 것은 그와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하지만 분명 운명이 없다고 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거에요. 저는 그것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엽귀의 마법사들은 대법전을 미워하기 때문에 감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법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시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이들을 처단하죠. 분명 개개인도 그럴 겁니다. 저는 연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운명을 맺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운명을 지웠던 거에요.”
서후는 확신에 찬 그 말에 잠시 놀란 듯 보였다. 성정이 섬세한 엽귀는 이안의 말을 한참 고려하다가 대답했다.
“이안 씨는 강하시네요. 그 관점 또한,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칼날의 방향의 차이라고 할까요. 저는 양날의 검이기에 검을 쥐면 손에 피가 배어들어옵니다. 이안 씨는 외날검이에요. 안정적이고 내구력이 좋지요. 그 검을 잘만 다룬다면 분명 당신의 앞길을 인도해 줄 겁니다.”
서후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기에, 이안은 따라 웃음을 걸었다. 이안은 서후가 사람을 칼날에 비유하는 것에서 그의 성정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양날검은 다루기 까다롭지만 알맞은 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무엇보다 강력하잖아요. 저는 서후 씨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양날검을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조금 상처를 입었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저도 알아요. 저 또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서후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듯 보였다. 그의 말에는 의심 한 치 없었고, 흐느낌도, 흩뿌려진 피도 없었다. 오직 따스한 생명과 약속의 노래만이 가득했다. 이안은 잠시 그것이 서후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약속이 깨어지고 노래가 끊기기 전의 그.
두 사람은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고 아이싱을 준비했다. 밀대와 하트 모양의 쿠키커터가 서랍에서 나왔다. 오븐을 예열하고 서후를 열심히 따라해 반죽을 찍어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쿠키의 고소한 냄새가 주방 가득히 퍼졌다.
다음은 아이싱을 올릴 차례였다. 서후는 이안을 위해 초심자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쑤시개로 찍은 붉은색 식용색소는 흰색 아이싱에 나선을 그리며 섞였다. 이안은 그 문양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조심스레 쿠키 단면에 아이싱을 찍었다. 아기자기한 하트들이 금세 붉고 흰 곡선의 설탕옷을 입었고, 그 곡선은 사방으로 부딪치는 이안의 사랑과 조금 비슷하기도 했다.
그리 많은 분량을 많든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설탕이 굳은 쿠키를 이안은 신기하다는 듯이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있는 이안에게 서후가 말을 걸었다.
“몇 개 상자에 담아드릴까요?”
“네?”
이안은 두 사람이 만든 쿠키를 내려다보았다. 몇 개를 선물로 주겠다는 말인 걸까?
“보수 말이에요. 이것보다 적당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말에 이안은 눈을 크게 떴다. 서후의 말대로였다. 분명 이 이상의 보수는 없을 것이다. 왜 깨닫지 못했을까. 서후는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것이다. 아이싱 쿠키를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은 역시 대화를 하고 싶어서였던 걸까.
“저희 손님들도 많이들 그러시죠. 마음을 과자로 전달하는 거요. 달콤하고, 섬세한 것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닮았잖아요?”
“... 네, 꼭 그렇네요.”
이안은 서후를 마주 보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역시 존경하는 선배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그리고 이안 씨에게는, 제가 더 많이 깨달았어요.”
서후는 그렇게 말하며 과자를 한 상자에 담았다. 이안 역시 같은 것을 부탁할 참이었기에 서후가 능숙한 손길로 과자를 예쁜 종이 상자에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포장을 마친 서후는 상자를 종이봉투에 담아 이안에게 건네며 그의 눈을 마주쳤다. 의안과 의안이 만났다.
“당신은 엽귀의 방문자입니다, 이안 허드슨. 그리고 엽귀는 당신과 같은 인재를 가져서 행운이에요.”
이안은 대답할까 한참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한낮의 제과점은 조용했다.
“그리고 당신은, 훌륭한 제과점의 설탕공예가이자 좋은 사람이에요, 자서후 씨.”
서후는 평생 그 말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덴의 숲 속, 어느 날 누군가에게 보여 주었던 미소가 인계의 작은 제과점에서 다시 꽃피웠다.
네 번째 의뢰인: 엽귀의 서경, 〈흐느끼는 생명과 피의 노래〉 자서후
보수: 이안이 직접 만든 쿠키
한 줄 후기: 쑥스러웠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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