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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허드슨과 수상한 우체부
2022. 1. 24.

솔직히 말해서 이안은 자신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크레도의 탑 입구에서 열세 살쯤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칼에 노란 눈을 한 소녀가 튀어나왔을 때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소녀는 탐색하듯 이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샛노란 눈이 마주치자 이안은 그 눈의 동공이 세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연락하신 분 맞으시죠?”

 

기묘한 탐색을 끝내기 위해 이안은 먼저 입을 열었다. 때마침 이안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소녀는 입꼬리를 올려 히죽, 하고 웃었다. 눈가에 장난스러운 기색이 번뜩였다.

 

“네, 제가 맞아요. 다이스라고 말했었죠?”

 

이제 정상인처럼 굴기로 마음먹었는지 다이스는 무릎 위까지 오는 붉은 원피스를 툭툭 털었다. 이안은 그 몸눌림이 몸에 밴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본래의 움직임은 그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깨어 놓는 것은 다이스의 다음 말이었다.

 

“그럼 저 이제 돌아가도 돼요?”

“네? 그럼 의뢰는…”

 

이안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펑! 소리와 함께 작은 연기가 일었다. 몇 번 기침하는 사이 시야가 돌아왔고, 눈앞에는 노란 눈을 한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서 있었다.

 

“역시 이게 편하다니까요! 초면부터 이 모습이면 못 알아볼 게 뻔하니까 신경써준 거라구요.”

“원래 고양이셨군요. 이제 한눈에 알아보겠어요.”

 

다이스는 그 대답에 만족한 듯 검은 꼬리로 이안의 다리를 가볍게 스쳤다.

 

“저도 멀리서부터 누가 그 유명한 이안 허드슨인지 알아보겠던데요?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길 줄이야!”

 

이안이 머쓱한 기분에 뒷목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다이스는 재빨리 명함을 꺼냈다.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 이안 허드슨 심부름센터. 단, 마법을 악용한다고 판단한 것은 거절할 수… 아무튼. 시키는 건 다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생각하면서도 이안은 어쩐지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이죠! 그건 걱정 말라구요. 그럼 첫 번째 의뢰!”

“죄송하지만 한 분당 한 의뢰만 받고 있습니다.”

“떼잉쯧… 그럼 이건 그냥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쳐요. 천애로써, 저도 소문이 파다한 당신의 연애담을 듣고 싶은데요?”

 

이안은 목부터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떠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이는 그다지 없었을뿐더러 자주 겪는다고 해서 덜 부끄러워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길고 상세한 버전을 듣고 싶으세요, 아니면 짧은 버전을 듣고 싶으세요?”

“꺄아아!”

 

고민이 무색하게 다이스에게는 그 대답만으로 충분한 건지 작고 귀여운 앞발로 이안의 다리를 마구 응징했다. 장난스럽게 때리는 것을 알면서도 슬슬 아프기 시작한 이안은 다이스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다이스는 얌전히 안기다가 이안이 안정감 있게 몸을 받치자 어깨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왜 때리시는 건가요?”

“이건 엄청 좋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대가예요! 세상에, 대법전은 아직 살아있었군요!”

 

라투나 님께서 들으셨다면 주무시다가도 깨어났을 발언이기에 이안은 그가 환몽전 깊은 곳에 잠들어 계심에 짧게 감사했다.

 

“연애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물론이죠! 저는 사랑을 사랑하는 천애, 〈단잠을 지키는 나이트워커〉니까요.”

 

남의 사랑에 푹 빠져 사는 천애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하여간 천애들은 별난 사람이 많다는 이안의 선입견을 한 번 더 강화해주는 계기만 되었다. 품에 안긴 다이스를 내려다보자 다이스는 뭔가 궁금한 게 있어요? 란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까만 밤이 팔 안에 들려서 동그란 별 두 개만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물렁물렁하고 뜨뜻한 밤이었지만.

 

“그래서 의뢰하고 싶으신 건 뭔가요?”

 

두 사람은 다이스의 지시에 따라 크레도의 탑 안쪽으로 들어갔다. 로비는 한산했고, 이따금 천애를 안은 엽귀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곧 자신의 바쁜 일로 돌아갔다. 이안의 구두 소리만 넓은 홀에 울렸다. 다이스가 꼬리나 앞발, 말, 혹은 정말 귀찮을 때는 앩, 앵. 하는 방향으로 도착한 곳은 한 천애가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

 

다이스는 여기서 멈추라는 듯 꼬리를 한번 살랑이고는 이안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온기에 이안은 조금 허전해졌다.

 

“바로 여기에요, 여기.” 

 

다이스가 사납게 속삭였지만 이안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이스가 목소리를 낮추기 원하는 것 같았기에 자신도 속삭였다. 이런 것은 그냥 염화로 하면 안 되는 걸까?

 

“여기에서 뭘 하면 될까요?”

“여기에서 일하시는 천애분, 최근 예언 적중률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지고 있거든요!”

 

그 말에 이안은 눈을 크게 떴다. 예언을 업으로 삼는 천애의 예언 적중률이 떨어진다면 큰일 아닌가. 그리고 그 원인은 아마…

 

“맞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다이스는 엄청나게 즐거운 남의 비밀을 이야기하듯 히죽히죽 댔다.

 

“그럼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요? 예언 적중률이 떨어진다면 천애로써 일하기 힘들 텐데요.”

 

이 작은 고양이는 뭘 의뢰하고 싶은 걸까? 그렇게 내려다보던 이안에게 다이스가 당당하게 선언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오늘의 의뢰는, 두 사람을 이어지게 하는 거예요!”

 

작은 몸에서 나온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이안은 목을 가다듬었다.

 

“저희가 말인가요? 그런 문제는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대법전을 휩쓴 연애담의 주인공답군요! 정론이에요! 하지만 이래로 두다가는 천애에서 잘리고 말 뿐이에요. 그러기 전에 ‘나, 당신을 사랑해서라면 백수라도 될 수 있어!’ 하고 아름답게 맺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대단히 극화된 시나리오였지만 이안도 다이스가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이안이 짐작하건대 이번 연애담의 두 주인공은 각자의 위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았다.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의뢰를 수긍하기로 했다. 대법전에서도 예언 적중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마법사가 천애에 눌러 붙어 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 전문가 천애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추천하시나요?”

 

다이스는 그 말에 기분 좋아진 것인지 이안 발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고전 중의 고전, 러브레터죠!”.

 

이안은 잠시 후에 입을 떼었다.

 

“그건 본인이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대필한다면 금방 들킬 것 같은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천애분, 사랑하는 상대분한테 너무너무 보내고 싶었지만 보내지 못했던 연애편지를 몇 통이나 써 두셨거든요! 우리는 그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거예요!”

 

다이스의 목소리가 신이 나 새된 소리가 들어갔다. 이제 두 발로 폴짝폴짝 뛰며 이안의 바지를 긁는 고양이를 이안은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럼… 그 편지를 훔쳐서, 상대분께 전달하는 것이 의뢰인 가요?”

“빙고!”

 

아쉽게도 다이스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도리어 이안의 바지를 손톱으로 틑어 그를 끌고 가려고 애썼으나, 얼마 전에 깎은 것인지 손톱은 뭉툭했다. 성이 난 다이스는 애꿎은 이안을 앞발로 한 대 치고 문 앞으로 다가섰다.

 

“안에 아무도 없으신 것 맞죠?”

“스케줄 다 확인했어요. 마침 다들 임무에 나가 있거든요! 예언은 맞을지 몰라, 후후후!”

 

한숨을 쉬며 이안이 문을 열자 다이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안이 조심스레 문을 닫으며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건가.

 

이안이 이국적인 양식으로 꾸며진 실내를 둘러보는 동안 다이스는 예상 가는 곳이 몇 군데 있다는 듯이 재빨리 몇 곳을 뒤졌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찾은 곳에 잠금이 걸려 있자 이안에게 재촉했다.

 

“...”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이안의 등에 잠시 식은땀이 흘렀다. 이안은 철사를 몇 번 움직여 쉽게 잠금을 땄다. 안에는 다이스의 예상대로 편지 몇 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편지통이 온통 분홍색이며 하트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 내용은 그렇게 의심하지 않아도 좋았다.

 

“어느 분께 전달드려야 하는지 아시나요?”

“물론이죠! 저는 준비된 사랑꾼이랍니다?”

 

그 단어의 조합, 그렇게 쓰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이 천애에게 익숙해지기로 했다. 아직 반나절이 남았다. 아주 긴 반나절이 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우선 두 사람은 다이스가 알아온 주소를 편지에 쓰기로 했다. 다이스가 소녀의 외형으로 변해 펜으로 휘갈긴 글씨체는 답지 않게 고풍스러워 이안도 놀랄 정도였다. 펜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봉투 전체에 글씨를 덮었다.

 

“자, 이제 이걸 우체통에 넣으면 돼요! 그럼 시간이 전달해 줄 거예요.”

“인계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물론이죠! 본래 모습이 고양이긴 해도, 방문자라구요.”

 

두 사람은 한 도서관을 통해 인계로 나갔다. 도서관 옆 우체국으로 가는 길이 금방이었다. 걷던 도중 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떼었다.

 

“연애담에 대해 물어보셨으니 저도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하세요, 하세요! 뭐가 궁금하신가요?”

 

이안은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 본모습이 고양이신데 어째서 방문자로 각성하셨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다이스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이안은 황급히 덧붙였다.

 

“아, 무례한 질문이었죠? 죄송해요. 아무래도 방문자 분들은 대개 사람의 모습을 하고 계셔서 저도 모르게 궁금해졌네요. 그래도 여쭙는 게 아니었는데.. ”

 

이안은 몸체가 살짝 차도 쪽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다이스가 자신을 홱 밀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놀라 돌아간 몸이 다이스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안은 눈을 껌뻑거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다이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저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요!”

 

차도 뒤에서 자동차 몇 대가 쌩하니 지나갈 때까지 이안은 말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곧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이스는 우쭐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네요, 제가 당연한 걸 잊었어요. 다이스 씨가 방문자가 아니라면, 누가 방문자겠어요?”

“그렇죠? 한번 더 말해봐요! 제가 뭘 가지고 있다고요?”

 

두 사람은 제법 화기애애해진 채로 편지들에 우표를 붙이고는 우체통에 넣었다. 다이스는 이안의 반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이야기를 하느라 둘은 한참을 보냈다. 어느 정도 의뢰가 마무리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해 질 녘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보수로 생각해두신 건 있으신가요?”

“아, 상당히 독특한 요구였죠? 그게…”

 

다이스는 곰곰 떠올리듯이 검지를 턱 끝에 짚었다 노란 눈의 동공이 낮보다 풀어져 있었다.

 

“음, 그거라면 보수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는 제 손에서 떠나보내고 싶은 물건이기도 하고요.”

 

고양이의 모습으로 방향을 지시한 아까와는 다르게 다이스는 앞장서 걸었다. 이안은 그를 따르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림자가 짙게 깔렸고, 붉은 햇빛이 모든 것을 물들일 때 그들이 멈춰 선 장소는 공동묘지였다. 다이스는 언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꽃다발을 들고 어느 묘 앞에 멈춰 섰다. 이안은 반 발짜국 뒤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여기거든요, 마리아의 묘가.”

 

딱히 이안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이안은 잠자코 뒤에서 서 있었다. 누가 보았더라면 기묘한 풍경이라고 했을 것이다. 묘 앞에 선 붉은 원피스의 소녀, 그리고 그 뒤에 선 청소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잠시 흘렀다.

 

“제가 각성할 때 같이 있어준 사람이에요. 각성하기 전에도, 길고양이였던 저를 주워서 키워줬구요.”

 

다이스는 여전히 묘지만을 바라본 채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 사람이 제게 사람의 마음을 알려줬어요. 손해를 봐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손을 탄 것은 전부 사랑해버리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전 일부러 집에 많이 안 있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이 날 버리면 난 정말로 갈 곳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잠시 이야기를 멈춘 다이스는 몸을 숙여 쭈그려 앉으면서 묘 옆에 흰 꽃다발을 두었다.

 

“조금 더 같이 있을 걸 그랬어요. 언젠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까 봐 불안했을 텐데…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해줄 걸 그랬어요.”

 

다이스는 잠시 그를 상상하듯 눈을 감았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게 너무 다행이에요. 그래서 마리아가 잊혀지지 않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렇게 기억되어서 다행이에요. 지금도 그 집에는 마리아의 사진이 있어요. 난롯가 옆에 잘 보이는 곳에요. 늙어서 쭈글쭈글한 사진이지만.”

 

다이스는 폴짝 뛰듯 일어나서 마침내 이안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 지금은 죽었거든요.”

 

이안은 잠시 다이스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이안이 겪어본 적 없는 슬픔이었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흘러야 알게 될 슬픔이지만 그렇다고 슬픔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담담한 눈길로 다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분도 당신을 만나 다행이라고 여기셨을 거에요.”

 

“... 그랬을까요?”

 

다이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크레도의 탑에서 본 근질근질한 미소도 아니었고, 우체통 앞의 후련한 미소도 아니었다. 그것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이의 미소였다.

 

“자, 여기요. 이걸 가져가요. 보수예요.”

 

다이스는 품에서 수첩 한 권을 꺼냈다. 집중하고 나서야 이안은 그것이 마도서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는 이 마도서 때문에 각성했어요. 마리아의 다락방에 있었거든요. 이제는 보내줄래요. 이제는 내 손에 들고 있지 않을래요.”

 

이안은 말과 말 사이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다이스가 건네는 수첩은 그 무엇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의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돌려받기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다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그 물건이 또 어딘가에서 사랑의 상징으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에게는 이미 마리아를 추억할 물건이 많이 있으니까요.”

 

잠시 다이스를 바라보던 이안은 그 말에 수긍했다. 그도 그 나름의 장고가 있었을 것이다. 위로의 말을 고민하던 이안에게 다이스가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죽상을 하지 마요. 사랑을 하고 있다면서요! 전력으로 달려요, 이안!”

 

내려다본 다이스는 씩 웃고 있었다. 그 말에는 이안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리아라는 사람이 다이스에게 져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면서 이안도 환하게 웃었다.

 

“네!”

 

 

 




첫 번째 의뢰인: 천애의 방문자, 〈단잠을 지키는 나이트워커~야간경비원~〉 다이스.

보수: 다이스를 각성시킨 마도서.

한 줄 후기: 직접 발로 걷지 않아도 안아서 옮겨준다는 점이 편안했어요!

 

이안 허드슨과 수상한 우체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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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yzDCgArwlEk

 

 

새벽별의 옅은 빛이 커튼을 헤치고 들어왔다. 그것은 어슴푸레한 손길로 방의 컴퓨터, 옷장, 책상을 데우다가 금방 사라질 듯 깜빡거렸다. 이안은 가만히 그것을 좇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새벽은 당신을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비단 그 이름 때문이었을까. 당신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새벽을 떠올리게 하였다. 동이 틀 때면 지평선 저 아래부터 부하게 밝아 오는 햇빛, 시리듯이 파란 새벽하늘과 깜깜해져 가는 별들. 누군가의 눈썹을 닮은 흐릿한 구름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밤새 켜진 컴퓨터 화면에서는 미약한 열기가 느껴졌다. 화려한 LED 키보드가 다시 한 번 물결친다. 웅웅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와 바탕 화면에 가득 깔린 게임 아이콘이 무색하게 그 어느 프로그램도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이안은 다시 한숨을 쉬며 의자 등받이를 기울였다.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밤잠을 설친 것이 오늘로 며칠이나 되었던가. 누우면 다른 생각이 나고, 다른 생각을 지우려고 생활을 바삐 해도 대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안은 마우스를 몇 번 달깍거리다가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자신이 알고 있는 답은 하나였다. 정석으로 가는 방법. 이안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두 번 클릭했다.

 

 


 

레스토랑은 이안의 용돈을 탈탈 턴 만큼 경치가 환상적이었다. 미리 음식을 맛보고 데이트를 예비할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지라 이안은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지나가듯이 리콰이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음식, 조용한 분위기,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에 프라이버시까지. 이안이 사랑하는 남자는 대단히 까다로웠으므로, 그가 신중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사 주었던 캐주얼한 정장을 다리고, 서랍장 깊숙이 넣어뒀던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한참동안 매만지고. 그러는 와중에도 이안은 초조하게 염화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갈 것 같다는, 혹은 업무가 길어져서 오늘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에두른 거절. 그러나 그런 염화는 오지 않았고, 심지는 이안 속에서 굳어져만 갔다.

 

30분 일찍 나간 약속장소에서 이안이 맞은 것은 쌩한 찬바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근사하게 차려입은(적어도 이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리콰이드 던이 찾아왔으며, 두 사람은 그대로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분위기나 서비스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런 쪽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안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이안에게 문제되는 것은 음식의 맛이 아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리콰이드는 잠시 이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이안의 진심을 캐묻는 것 같아, 평소 같은 때였으면 이안은 기분좋은 웃음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안이 긴장을 풀 수 있을 때가 아니었고, 또 풀리지도 않았기에 그는 눈에 빛을 내며 응수했다.

 

한순간이 지나고, 리콰이드가 한숨을 쉬자마자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던 긴장의 끈이 풀어졌다. 묘하게 리콰이드의 분위기가 다정해진 것 같았다.

 

“고맙다. 내가 에스코트 받아야 하는 쪽인 건가?”

 

그 말에 이안은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자신만만한 미소가 자연스레 올라왔다.

 

“그런 셈이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테이블은 두꺼운 커튼으로 다른 테이블과 나뉘어져 있었다. 촛불이 간간히 공기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고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는 소리가 언뜻 들려온 것 같았다. 리콰이드는 이안보다 한 발자국 먼저 나아가 손을 들어올렸다. 의자를 빼달라는 뜻인 걸까. 이안이 움직여 의자를 빼는 행동을 취하자 그는 푹신한 의자에 바르게 앉았다.

 

음식은 리콰이드의 입에 맞는 것 같았다. 예의상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렇다기엔 음식을 먹는 속도가 쳐지지 않았다. 이안은 먹는 도중에도 그를 힐끔힐끔 올려다보았다. 식기를 쥐는 방법, 음식을 써는 방법, 식기의 순서, 음식을 밉지 않게 넘기는 방법 하나하나에 리콰이드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이안은 자연스레 체득한 “필요한 것들”을 실감하며 그릇을 비웠다.

 

디저트가 나오자 잠시 침묵이 돌았다. 이안은 타이밍을 골랐다. 대화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는 시점. 방해는 한동안 없을 것이었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순조로웠다. 앞으로의 결과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 그는 잠시 차를 입에 머금다가 입을 떼었다.

 

“그 때로부터 시간도 좀 지났네.”

 

딱히 지칭하지 않아도 언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양측 다 알고 있을 것이었다. 작은 행성, 춤추던 환상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꽃밭.

 

“내 마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리콰이드가 작게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좋아해, 리키.”

 

이윽고 이안은 숨 죽여 대답을 기다린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리콰이드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래. 나도 좋아해.”

 

이안의 눈이 잠시 커진다. 리콰이드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도 내 감정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기만 같아 보이나? 하지만 그러고 싶었어. 네가 말하는 대로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이게 바로 나의 생각이야. 오해가 있었다면 정정하겠다.”

 

구불구불, 미로 같은 리콰이드의 사랑. 그 속에서 이안은 가까스로 답을 찾아낸다. 열어두었던 것보다 닫아두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어두침침한 미궁 속에서 이안은 소문 속의 괴물을 찾아나선다. 자신의 심장을 쥐고 있는 피의 옥좌에 앉은 그 이를.

 

그 날의 당신을 떠올려, 숱한 밤마다. 피로 얼룩진 옥좌와 나를 무감하게 내려다보는 당신을,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닿고 싶어서.

 

“괜찮아.”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미궁,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가둔 철장. 그 안으로 실타래가 도르르르 풀어진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실타래에 이안은 불을 붙이고 뛰기 시작한다. 화염 같은 나의 사랑이 당신의 어두운 세계에 조금이라도 빛이 되기를. 당신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내가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기를.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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