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망자(好者亡者)
2022. 1. 29.

https://youtu.be/RqDBtn-1VqY

 

“하아아아….”

“넌 내 사무실 바닥 꺼트리려고 들어왔냐?”

 

츠요시가 삼백십육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은 옆에서 혀를 쯧쯧 차면서도 츠요시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츠요시는 드러누워 있던 사무실 소파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하다가 다시 철푸덕 엎어졌다.

 

“흐어어어….”

“계속 방해하면 애들 불러서 내쫓는다.”

“너무해요! 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몇 시간째 내 소파에 앉아서는 세상이 끝난 마냥 음침하게 앉아 있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거냐? 하루이틀도 아니고.”

“저 원래 이런 거 아시잖아요. 알고 팀에 데려온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쇼파 좀 빌릴게요오…”

“에휴, 내 팔자야.”

 

다시 대장이 타자를 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츠요시는 볼을 누르는 싸구려 가죽의 감촉에 얼굴을 꾹 꾹 문대다가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왜, 육개장 해 준다고 말했잖아.”

“육개장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얼씨구, 그럼 또 뭐가 문제야.”

 

어느새 대장이 자판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껸 채로 츠요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판이 깔리자 츠요시는 되려 쿠션 뒤로 머리를 숨기며 한숨을 쉬었다.

 

“저 아시잖아요, 맨날 하는 그거…”

“....”

“또…”

“... 죽었냐?”

“네에에….”

“너도 참 기구하다.”

 

대장의 한숨이 쿠션을 비집고 들렸다. 츠요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왜요! 제가 웃기시죠 지금! 전 진심이었단 말이에요!”

“그래, 그래. 내가 너 진심인 거 모르겠냐. 넌 지난 연인들한테 다 진심이라고 하잖아.”

“그게 아니라, 진짜 좋아했다고요…”

“얼굴을?”

“그 사람을요!”

 

대장은 등받이에 쭉 기대서 츠요시를 멀찍이 가늠했다.

 

“너 그때 좀 이상한데 싶긴 했다. 같이 술 마셔줘?”

“안 마셔요…”

 

그 말에 대장의 표정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평소의 츠요시라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하는 비명을 질렀겠지만 지금은 등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추레하게 소파에 엎어져 있었다.

 

“술 안 마실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건데…”

“....”

“괜찮냐?”

“몰라요… 시체라도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츠요시는 소파와 쿠션 사이 급조된 어둠 속에서 그날의 충격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화살이 심장을 꿰뚫을 때 그는 화살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살해한 토요코를 원망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충격만이 눈앞을 덮었고 다리에 힘을 풀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했다. 리더 자리 간의 분쟁. 죽지 않더라도 험한 꼴을 보았을 것이며, H.E.A. 에게 체포되었더라도 사형에 처해질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당연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한 번쯤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투가 끝나고 부축한 다음에 번호를 주면서 밥 한 번 먹자던가, 영화 한 번 보자던가… 그런 볼품없는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그가 그 진심에 응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몇십 번이고 되풀이한 장면.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보았으면서도 츠요시는 자신을 의심했고, 또 의심하고 싶었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당신을 좋아한다고, 당신을 좋아하는 나에게 기대해보고 싶다고 전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이미 전했을지도 몰라. 얼이 빠져 있는 나머지 그런 말을 한 것 자체를 잊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잠시 만난 사람에게 누가 관심을 두겠는가? 그리고 리베리온즈의 내부 알력 다툼에 죽은 그에 대해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미련한 자신이나 여기서 이러고 앉았지.

 

…한 달? 두 달이면 잊을까? 츠요시는 멍하니 생각했다. 대장의 말대로 술을 마시면 잊기 조금 더 쉬울지도 몰랐다. 그런데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잊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제정신의 츠요시는 제정신으로 제정신이 아닌 사랑의 후폭풍을 맞고 있었다.

 

아무렴 어때.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다. 마지막도 아닐 것 같고… 입안이 씁쓸했다. 다음 동창회 전까지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겠지. 그는 온 세상의 고난을 다 끌어모아 삼백이십 번째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아……”

“시체 찾는 거 도와줘?”

“아니에요….”

 

제법 호의가 담긴 대장의 제안에도 츠요시는 머리를 쿠션에 쿵 쿵하고 두드렸다. 대장은 혀를 쯧 하고 찬 다음 다시 컴퓨터로 돌아갔다. 자판 치는 소리가 사무실에 잔잔히 울렸다.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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