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허드슨과 커피쿠키
2024. 11. 2.

https://youtu.be/MlMtPlcV6Lo?si=R7v1U9xWC7Wh_R7N

 

 

눈앞이 화악하고 밝아졌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솨아아 소리를 낸다. 이번엔 무슨 사건일까, 누구와 만나게 될까. 수십 개의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친다. 기대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이안이 마침내 눈을 뜨면, 그곳에는…

 

“...?”

“...?”

“어… 한 명이었던가? 이상하다, 보통 세 명이나 일곱 명이 오는데. 뭐, 괜찮겠지. 그래서 클래스는? 힐러나 탱커면 좋겠지만, 내가 스왑할 수도 있어.”

“...?”

“...?”

“그러니까… 아젬의 술식으로 불려 온 사람이지?”

“난… 심부름센터 사람인데?”

“심부름센터?”

 

뭔가 꼬여도 대단히 꼬인 듯싶었다. 이안은 일단 미간을 짚고 한숨을 쉬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안의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그러니까 너는 평행세계의 나고, 지금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거지. 그게 아젬의 술식이랑 다른 게 뭐지? 하는 거대한 낫을 든 이안 옆에서 우리의 이안 허드슨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상태였다. 뭐지, 이 태도는? 심부름센터에 의뢰를 넣은 적이 없는 사람 치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안의 존재를 긍정했다. 아마도 이 이안은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한참 전에 이해하고 받아들였나 보다.

 

그래도 저 태도는 뭐냐, 저 태도는. 마치 밥 먹듯이 평행세계의 사람들을 소환해다가 자신의 일을 돕게 만든다는 듯이. 틀려?

 

“어, 아니? 맞는데?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잖아.”

 

아무래도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서 중얼거리고 있었나 보다. 이안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러니까, 어디서 주웠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고대 술식을 이 별을 구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고.”

“응.”

“그래서 지금 임무는 뭔데?”

“아, 별을 구하는 건 끝났어. 그거 하고 싶었으면 약간 늦었는데.”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게 뭐냐고.”

“어… 연구실을 탈출한 거대 수중식물들 처리하기?”

“...”

“미안, 근데 이거 시간제한 있어서.”

“얼마 남았는데?”

“3분.”

“3분?!”

 

앞으로 시간제한 같이 급한 일이 있으면 두괄식으로 말하라고 단단히 일러둬야겠다고 생각한 이안은 앞으로 먼저 뛰쳐나가며 외쳤다.

 

“딜러 둘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의 예상은 맞았다. 딜러 둘은 3분 안에 돌발 임무를 해치우기에 충분했다. 그 외에도 이 라바린토스라는 지역에는, 아니, 에오르제아 전역에는 돌발 임무들이 “돌발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는 것 같았지만 우선은 한 건을 해치웠으니 됐다. 지쳐서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이안 옆에 낫을 든-리퍼라고 칭하기로 했다-이안이 따라 앉았다.

 

“원초세계에서의 첫 임무치고는 나쁘지 않지? 아, 심부름센터 어쩌구 사람이라고 했었지? 그래서 바로 돌아가지 않는 건가 봐.”

“대가를 받는 것까지 마쳐야 하거든.”

“대가? 대가는 뭔데?”

 

순진하게도 주머니에 뭔가 들었을까 쑤시고 있는 저 리퍼 이안을 대체 어쩜 좋나 하고 이안은 생각했다.

 

“그건 나중에 받을게. 일단 좀 쉬자. 3분이 뭐야, 실질적으로 2분 40초라서 아슬아슬하게 끝냈잖아.”

“미안. 원래 이렇게 사소한 일로는 안 부르는데 혼자서 돌발 임무 돌기가 너무 고역이라서.”

“하긴, 시간이 걸려서 문제였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어 보이는데. 이런 것까지 하는 이유가 있어?”

“한동안은 올드 샬레이안에 붙어 있기로 했거든. 그런 겸사겸사 치안도 봐주고 하는 거지. 아, 커피 쿠키 먹을래? 엄청 많이 있는데.”

 

이안이 쿠키가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를 꺼냈다. 대체 그 안에 어떻게 다 들어가는 거지. 공간 마법이라도 걸려 있나.

 

“지난 시즌 음식이라 좀 남았는데, 이젠 잘 안 팔려서 그냥 수련할 때 먹고 있어. 도움이 되거든.”

“...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3% 정도?”

 

그게 그렇게 딱 나오는 숫자인 거야? 아니 그보다 적어! 이안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퍼 이안은 또각또각 커피쿠키를 먹고 있었다. 이안은 조금 더 그를 추궁해 보기로 했다.

 

“그럼 여기는 올드 샬레이안…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정확히는 올드 샬레이안 지하에 있는 라바린토스라고 하는 연구 공간.”

“이게 전부 다 연구용이라고?”

 

이안이 되물은 이유가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라바린토스는 거대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상층부였는데, 하층이 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이안의 경악을 알아챘는지 리퍼 이안이 씩 웃었다. 그 웃음에서 일말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샬레이안은 지식의 도시거든.”

“너도 샬레이안 사람이야?”

“그건 아니지만, 여기 마법 대학을 나왔. 제2의 고향이라고 볼 수 있지.”

 

흐음, 그렇구나. 이안은 잠시 동안 이 모든 정보를 검토했다.

 

“그래서 올드 샬레이안에 남아 있기로 한 거야? 왜, 별을 구하는 모험은 끝났다며.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아… 그게, 음, 내 입으로 말하려니 갑자기 부끄럽네.”

 

저건 분명히 리콰이드와 관련이 있다. 저렇게 몸을 배배 꼬는 걸 보니 리콰이드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다. 그는 리퍼 이안이 한참 공상에 빠지려는 것을 싹둑 잘랐다.

 

“리콰이드지?”

 

리퍼 이안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 아니, 평행세계의 나라고 했지. 그럼 너도 리콰이드를…”

“그런 셈이지.”

“역시 다른 세계에서도 그렇구나…”

 

리퍼 이안은 자신이 리콰이드를 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안은 그런 리퍼 이안이 또다시 자신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이안은 이어서 그를 채근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어떻게 됐는데?”

“.......”

 

입을 다문 리퍼 이안 너머로 이안도 예상치 못하게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장면은 흐릿하더니 점차 또렷해져 선명히 읽어낼 수 있었다. 이안에게는 마치 마력의 흐름을 통해 과거를 읽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리퍼 이안과 눈을 마주하자 그는 적잖이 놀라 보였다.

 

“잠깐, 설마 초월하는 힘으로 과거를 본 거야?”

“초월하는 힘?”

“그래, 방금 에테르를 통해 과거를 봤잖아. 뭘 봤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야… 네가 리콰이드에게 공개고백키스를…”

“그만! 거기까지! 그만! 그만 들어도 괜찮아! 그리고 역시 초월하는 힘으로 본 것 맞잖아!”

 

아니래두. 하지만 여기선 적당히 넘어가는 게 맞겠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 이제 난 몰라…”

 

이안은 좌절하고 있는 리퍼 이안을 다독였다.

 

“왜, 리콰이드도 놀라긴 해 보였지만 질색하는 기색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금 같이 올드 샬레이안에 머물고 있는 것 아니야? 기회를 준 거잖아.”

“응…  그렇지만 솔직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래서 라바린토스에 나와서 돌발 임무만 하고 있던 거로군. 이안은 드디어 거대 수중 생물과 이 이안 허드슨의 상관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잠시간의 생각 끝에 그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네게 리콰이드란 어떤 존재인데?”

“음… 그거 어려운데.”

 

다행히도 그 질문은 이안의 사고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리퍼 이안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충실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스승이자 좋아하는 사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음… 그리고 정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랄까?”

 

고르고 고른 말 한마디에 리퍼 이안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끄러움, 멋쩍음, 그러나 그런 감정은 단 하나,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기인했다. 리콰이드에 대한 그의 감정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기대로.

 

이안은 그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구나, 그 감정은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분명 갓 떠오르는 샛별과 같은 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안의 입가에 자연스레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걸 그대로 전해 보는 건 어때? 리콰이드도 이렇게 도망치는 것보다는 그 편을 더 좋아할 거야.”

“공개고백키스를 했는데도?”

“그건, 끙, 그래. 공개고백키스를 했는데도.”

 

리퍼 이안이 풀밭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은 기분 좋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바로 리콰이드를 만나고 와야겠어. 여기서 기다려줄래?”

“아니,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거든.”

“아! 그러고 보니 보수를 줘야 했지? 어떤 걸 원해? 지금 당장 거래 가능한 희귀한 물품은 없지만 길이라면…”

“괜찮아, 이미 보수는 받았으니.”

 

리퍼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언제 한 번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고맙게 들을게.”

“나야말로 고마웠어! 그럼 잘 있어, 이안!”

 

그가 몸을 돌려 리콰이드 쪽으로 달려가기 전에 보였던 환한 미소는 라바린토스의 인공 태양보다도 밝았다. 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이안은 혼자 옅게 웃었다. 커피쿠키라, 한동안 먹을 일 없는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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