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2024. 3. 5.

어느 날 이안 허드슨은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하나의 조그만 인형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알았다는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마라. 이안 허드슨은 꽤 심각했다. 연인의 옆에서 자다가 일어나 보니 한 뼘 가량의 조그만한 봉제인형이 되는 일을 겪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된다는 말이냐?

 

그러나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이안 허드슨은 마법사였다. 그리고 마법사로써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면 이 정도의 일에도 무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안 허드슨은 침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그는 주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것으로 보아 시간은 오전의 어드메였다. 몸에 비해 거대해진 머리를 돌려 보니 시계가 오전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몸으로도 생체리듬은 기어코 유지되는구나. 이안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록 가슴을 쓸어내리기에는 팔이 너무 짧았을 뿐만 아니라 빵빵한 솜 때문에 빠듯했지만 말이다.

 

그는 다시 시선을 옆으로 돌려 자고 있는 연인을 살펴보았다. 휴, 다행이다. 그는 인형으로 변하지 않았다. 어딘가의 마법재액인지는 모르지만 이안 허드슨만을 노린 모양이다. 이것은 이안 허드슨은 물론 마법재액에게도 무척 다행인 처사였다. 이안은 고열사로 된 머리카락을 넘기며 깨어난 그가 자신의 팔다리를 보았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또 그에 대한 연인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어찌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서운 표정을 한 그는 -침실에서의 즐거운 장난 도중일 때를 제외하고- 연인인 이안 허드슨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상태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자고 일어났는데 옆에 말하는 인형이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연인과 닮았다고 해도 상당히 사특하게 느껴질 것이 당연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불에 타는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마법 재액 취급당하는 것일까. 아니, 마법 재액은 맞는 것 같았지만.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기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기서 고민하고 있는다고 답이 나오지도 않을 것이 뻔하고. 아, 뭔가 꿈 속에서 하와이안 셔츠와 하트 선글라스를 쓴 인형에게 쫓기던 것도 같은데, 차라리 다시 눈을 감고 꿈이 이어지기를 바라면 그에게 해결책을...

 

...그럴 리가 없었다. 이안 허드슨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뒤뚱뒤뚱 일어섰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적어도 잠옷까지 함께 인형옷으로 변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인형 옷의 조그만 똑딱이 단추를 푸르며 생각했다. 이 근방이라도 달리고 오자. 일단 달리는 거다. 인형이 땀을 흘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달리고 오면 무언가 생각이 나겠지. 결국 이안 허드슨은 잠시간의 외면이라는 도피를 선택했다.

 

다행히 옷장 안에 있는 옷 또한 자신의 몸 크기에 맞춰 작아진 듯 했다. 몸의 몇 배나 되는 옷장 문을 끙끙대며 연 보람이 있구나. 이안 허드슨은 솜으로 손 짧은 팔로 집히는 아무 트레이닝 바지와 후드를 꿰어찼다. 입는다-는 단어보다는 꿰어넣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살, 아니 솜을 빼야 할까? 너무 뚱뚱해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런 순간에 절망이 눈앞에 드리워질 때도 있었지만 이안 허드슨이 누구인가. 머니먼 바다의 개척자가 아니었던가? 기적마저 손에 잡고 만다는 그가 아니었다면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안 허드슨은 뿌듯한 마음으로 헤드밴드를 고쳐쓴 뒤 물병을 챙기려 했으나 아차, 물병은 저 높은 싱크대 위에 있었다. 나중에 주방을 어떻게 쓸 지도 고민해야겠지. 일단은 시간이 아까우니 나가자.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가는 이안을 맞는 것은 상쾌한 아침 공기였다.

 

리콰이드의 집 부근은 대개 부유한 개인주택으로, 마당이 넓고 집과 집 사이가 멀어 사람을 자주 마주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말이지. 덕분에 이안 허드슨은 누군가 달리는 봉제인형을 마주치고 실신할 걱정 없이 안심하고 조깅을 시작했다.

 

바람은 솜으로 된 피부에도 어김없이 기분좋게 닿았다. 몇 블록을 달리다 보니 솜으로 된 이마가 조금 축축해진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재질로 이루어진 건지, 저주받을 이안의 머리카락은 솜인형이 되더라도 어김없이 사정없이 날려서, 머리에 둘러쓴 헤어벤드를 가져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동네도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졌지. 몇 달간 리콰이드의 집에 들락날락거렸으니 말이다. 자고 가는 것도 드물지 않았고...

 

그런 평화로운 생각을 하며 천천히 달리던 이안 허드슨에게 예상치 못하던 복병이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안 허드슨이 그에게 찾아갔다.

 

아차, 이 집에서 고양이를 풀어 키우던 것을 까먹었다. 평소라면 멀찍이서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갈 것을, 지금의 이안 허드슨은 솜인형이었다. 그것도 말하는, 달리는 솜인형이었다.

 

눈치 빠른 동물이 자신보다 작은 존재의 두려움을 맡아내지 못할 리가 없다. 왜옹, 하고 날 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라, 나를 볼 때는 저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분명 저것 보다 상냥하고, 부드럽고...

 

이안 허드슨은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고 있었지만 정말로 혼신을 다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뒤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며 쫓아오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흘끗 돌아본 이안은 그것이 곧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채만한, 아니, 그것은 인형이 된 이안 허드슨의 기준이었지만, 집채보단 큰 고양이가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안의 등에 솜털이 쭈뼛 섰다.

 

다행히 이쪽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몸으로는 달리기가 더할 수 없이 느리지만, 빨리 달리면 큰 머리 때문에 상체가 기우뚱하고 딸려가지만-! 어떻게든 죽기살기로 달리면 더 거리를 벌릴 수 있을 거다. 잘못해서 저것에게 잡히면 생사를 보장할 수 없다. 리콰이드에게 소각당하기 이전에 해체되어 여기저기 솜이 터져나와 버릴 거다.

 

이안 허드슨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젖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코너를 돌자 리콰이드의 집이 보였다. 이안은 온 힘을 다해서 울타리 밑으로 슬라이딩 해 반쯤 열려있을 뒷문으로 달려나갔다.

 

휴, 더 이상 쫓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원치는 않은 방향이었지만 잡생각을 없앤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이제 기진맥진해진 이안 허드슨은 집 안으로 들어오며 축축해진 헤드밴드를 벗었다. 가벼운 조깅이 아니라 전력으로 달렸더니 몸이 되려 무거워졌다. 솜이 물을 먹어서 그런 걸까? 이젠 다 모르겠고, 누워서 쉬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이안 허드슨은 운동복도 갈아입지 않고 무작정 침대로 들어가 이불 속에 꾸역꾸역 파묻혔다. 아직 리콰이드는 깨어나지 않은 듯 했다. 다행이야, 이대로 잠시 누웠다 일어나면...

 

어라,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완전히 지쳐버린 탓에 이안은 더 이상 수마를 몰아낼 기력조차 없었다. 그는 아직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연인 옆에 찰싹 붙어서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원래대로 돌아온 이안 허드슨이 편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의 연인이 침대 속에서 하나의 조그만 인형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불과 몇 십분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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